거짓말은 청와대가 했다.


[딴지총수 틈새논평] 거짓말은 청와대가 했다.


(서프라이즈 / 딴지일보 / 2009-6-19 12:44)












[틈새논평] 거짓말은 청와대가 했다

(딴지일보 / 김어준 / 2009-06-19)


 





최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기사가 하나 있다. 지난 월요일자(2009.6.9) RFA(Radio Free Asia) 발 기사다. (http://www.rfa.org/korean/in_focus/envoy_prevent-06082009112039.html)


 


제하의 이 기사는,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 일행의 방한 시 북한에 억류 중인 여기자들 석방을 위해 앨 고어 전 부통령을 대북특사로 파견하려 한다고 하자, 이명박 정부가 이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단 내용이다.


 


그 이유인즉슨 "미국인 여기자의 억류 문제를 놓고 미북 간에 진척이 있을 경우, 소재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 유씨 문제(간첩혐의로 억류 중인 개성공단 현대아산 근로자)가 한국 내 여론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 이란다.


 


니들만 문제를 풀면 우리가 욕먹게 생겼으니 니들도 좀 일부러 늦게 해결해주면 안 되겠니, 하는 소리다.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으려면 단순히 무능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단히 뻔뻔하기까지 해야지.


 


이 뉴스를 국내언론이 받아 전한 다음 날 소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나서서 "나도 보도를 봤는데 그게 말이 되겠나"라며 사실관계를 부인한다. 지난 한 주간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는, 특종이다. 왜냐.



 


1) RFA가 어떤 기관인지부터 보자. 그래야 이 뉴스가 제대로 재밌다.


RFA는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이었던 1942년, 미 전시정보국이 시작한 VOA(The Voice of America)가 모태다. 일본과 남태평양, 유럽과 북아프리카 등지에 송출되며 對나찌 선전방송으로 시작된 이 단파 라디오 방송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그 주 대상을 구소련으로 바꿔 이어지다, 91년 구소련 붕괴를 전후해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미 세계적 네트워크가 구축된 만큼 구소련이 붕괴됐다고 접지 말고 오히려 방송 범위를 미국식 세계질서에 호응하지 않는 모든 국가로 확대하고, 산재한 여러 방송국의 관리를 민간조직을 신설해 일괄 이양한단 논의가 시작되어 결국 1994년, 클린턴 정부는 국제방송법(International Broadcasting Act)이란 걸 입법한다.


 


그런데 같은 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핵무장을 선언함으로써 소위 1차 북핵 위기가 닥친다. 이에 아시아를 별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결국 2년 후인 1996년, 체코에 본부를 두고 유럽의 구소련 위성국가를 대상으로 방송했던 RFE(Radio Free Europe)를 벤치마크, 아시아 전담방송국이 만들어진다.


RFA의 탄생이다.


아시아 대상국들의 반응은 당연히 격렬했다. 96년 9월 송출된 RFA의 첫 對중국 방송이 겨우 30분에 불과했음에도 인민일보는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며 격분한다. RFA 방송을 체제전복을 위한 책동으로 간주하는 북한,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의 반응이라고 다를 리 없다.



그러나 이미 반세기나 방송을 유지해왔던 미국도 나름의 정교한 대응논리가 있었다. RFA 방송이 체제전복을 위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는 비난에 이렇게 답한다.


 


RFA는 최고 수준의 저널리즘을 준수하며, 모든 내용은 정확하고 공정하며 균형을 갖춘다. (Strict adherence to the highest standards of journalism is at the very core of RFA's mission. Our broadcast and online stories and programs must be accurate, fair, and balanced.)


 


RFA 윤리강령의 첫머리다. 정치적 선전선동이 아니라 불편부당한 팩트만 보도한다는 거다. 이 기조는 VOA 첫 방송 때부터 유지된 것이다. 1942년, 진주만공습으로부터 79일째가 되던 날, VOA의 첫 방송은 이런 유명한 멘트로 시작된다.


 






"뉴스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겠지만 우린 진실만 전하겠다."
"The news may be good or bad. We shall tell you the truth"


미국은 언론의 자유를 누린단 자부심과 상대 국가들은 그렇지 않기에 통제된 팩트만 유통시켜도 내부로부터 붕괴될 것이란 자신감이 만들어낸 방침이다. 실제 VOA는 클린턴-르웬스키 섹스스캔들처럼 미국의 치부에 해당되는 뉴스도 꾸준히 보도한다. 그러나 미국 내 인종갈등 따위는 다루지 않는 등 한계 역시 자명했다. VOA 전국장인 존 챈슬러는, 그래서, 그들 임무의 딜레마를 “저널리즘과 외교술의 교차로”(the crossroads of journalism and diplomacy)에 있다고 했었다.


 


미국 내에서도 이런 지적을 의식해 지난 99년부터는 정부의 정치적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완충역할을 방송위원회(Broadcasting Board of Governors)라는 독립기구에 맡겨, 방송 편집권의 완전한 독립을, 최소한 구조적으로는, 확보했다.


 


RFA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정확, 공정, 균형을 키워드로 내세우는 건 그래서다. 정치적 공작이란 비난을 정확한 사실보도로 넘어서겠다는 거다. 하여 구성원들도 직업적 저널리스트로 채운다. 더구나 운전자금이 100% 미 의회로부터 나오는 이상, 거짓 정보는 오히려 미국에 도덕적 타격이 될 터이고.


 


물론 사실관계가 정확한 것만으로 공정과 중립까지 절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어떤 사실을 보도할 것인가 선별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정치니까. 그러나 최소한 그들이 다루는 사실관계에 대한 신뢰도는, 전술한 이유로, 높다. 국내외 언론들이 이 RFA 보도를 인용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자, 그런 RFA에서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대북특사를 만류했단 보도를 했다. 이 보도는 두 가지 점에서 재밌다.


먼저, RFA는 그 존재목적상 도저히 친북일 수가 없는 미디어다. 명시적 임무가 북한주민들에게 통제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거다. 그러면서 정권이 아니라 인권을 말한다. 그게 VOA 이래로 축적된 노하우다. 정치공작이란 역공을 비껴가며 인도주의적 명분도 얻는 거다. 식량지원조차 퍼주기라고 비난하면서 인권은 끊임없이 거론하는, 우리 보수진영의 위선적 대북전술이 그 뿌리에서 나왔다.


 


RFA는 그렇게 북한에 관한한, 이명박 정부와 명백히 같은 편에 서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무능한지 그리고 그 무능을 감추느라 부리는 수작이 얼마나 찌질한지를 고스란히 노출하는 보도가, 그런 RFA에 의해 이뤄졌다.


이거 참 웃기다.


이 보도, RFA가 말하는 공정과 균형의 사례로 볼 수도 있다. 유, 불리를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실보도 한다는. 그러나 남한 보수단체의 삐라살포 정당성을 열 번 보도하면, 그에 대한 진보단체의 문제지적은 한 번 전할까말까 한 게 RFA다. 뭐 공정과 균형이란 강령도, RFA의 존재목적보다 상위가치일 순 없을 테니까. 이해는 간다.


 


그런데 이 사안은, 어떤 국내언론도 몰랐던 사실을, 따로 잡아내 보도한 거다. 뭔가 최소한의 균형을 잡아줄 사안도 아니고, 북한주민에 도움 될 뉴스도 아닌데 말이다. 공정과 균형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RFA 같은 곳에서 보기에도, 뉴스가 될 만큼 멍청했단 소리다.


 


이명박 정부의 실력이, 기습적으로 폭로되는 적나라한 장면. 그것도 같은 편에 의해. 이명박 정부가 같은 편에게도 이런 취급받는 걸 보며 한참 웃었다. 역시 바보짓은 누가 봐도 바보짓이다. 개인적으로 10년 이상 지켜본 RFA에서 한국정부를 이렇게 엿 먹이는 기사를 본 건 처음이다. 이 뉴스가 개인적으로, 지난주의 특종인 이유다.


 


두 번째로 재밌는 건, 청와대의 반응이다. 보도를 접하자마자 RFA라면 이 스트레이트 기사, 사실일 공산이 높다 봤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해서 청와대의 반응이 궁금했다. 언제나 반응은 그 자체로 많은 걸 드러내니까.


 


그런데 국내기자들의 확인요청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란 자는 “말이 되냐”며 간단하게 부인한다. 확인도 않은 사안을 그렇게 자신 있게 부인하긴 어렵다. 청와대를 대변해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더구나 “나도 보도를 봤다”고 했다. 이미 보도된 지 이틀이다.


그런데 부인했다. 둘 중 하나다. RFA가 오보를 했거나 아니면 청와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RFA의 오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다음 수순은 정정보도 요청이나 해명자료 배포 혹은 세게 나간다면 기사삭제 요구 정도가 될 게다. 국내외 언론들을 상대로 정정보도 요청은 물론이고 억대 손해배상 청구도 서슴지 않았던 그동안을 보자면 말이다. 지난 수요일 아사히 TV의 김정운 사진 오보에 엄청난 속도로 대응했던 것처럼, 오보에 대한 평소의 청와대 리액션 타임으로 보자면, 한 주 정도면 충분하다.


 


해서 일주일 내내 흥미진진 지켜봤다. 과연 어떤 액션을 취할까. 청와대의 요청에, RFA 본사가 있는 워싱턴 현지에서 백악관 출입기자 통해 사실관계 재확인하는 2차 보도나 정정 보도가 나올 수도 있는 거다. 정말 오보라면. 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RFA 기사를 클릭하며 기다렸다. 이제야 기사를 쓰는 이유다.


 


그러나 정정보도도 반론보도도 기사삭제도 손배청구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해당 기사는 아무 탈 없이 메인화면에 게재 되어 있다가 토요일이 되어서야 다른 기사에 밀려 메인에서 사라졌다. 물론 아무런 정정도 없이. 기사는 여전히 DB에 그대로 존재한다.


이거 참, 재밌다.


청와대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건 간단한 일이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이 6.2일 저녁 방한해 6.5일 새벽 중국으로 떠날 때까지 만났던 사람들의 명단은 이미 공개됐다.


3일 오전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권종락 제1차관,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공관에서 유명환 장관, 오후에 용산구 국방부에서 이상희 국방장관, 저녁에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4일 오전에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 한승수 총리 그리고 오전 11시 청와대에서 이명박.



확인할 사람 몇 없다.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의 소관은 아니다. 결국 외교통상부 장, 차관 통일부 장관,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 그리고 이명박. 못 찾을 리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들 후안무치를 폭로하는 뉴스에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거짓말은 청와대가 한 거다.


청와대의 거짓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 건 처음 본다. 웃기다. 그리고 뻑하면 국가 브랜드 운운하는데, 국가 브랜드는 이럴 때 정말 떨어진다. 바보들.


 



1)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이명박을 독재라고 한 DJ를 김대중씨라 했다. 박희태 대표는 “환각”을 일으킨 게 아닌가 한다며 비아냥거렸고.


이 두 인물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몇 년 전 한나라당과 조중동에서 그렇게 나라망신이라고 떠들어댔던 노벨평화상 로비설이 생각난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회에서도 주구장창 이 로비설을 들고 나왔었다.


박희태 당시 의원은, 2002년 10월 국회 본회의 대정부 첫 질의에서 이 로비설부터 제기한다. 이 날 안상수 당시 의원도 한 건 한다. 한나라당의 로비설에 민주당이 이회창 비자금설로 응수하자 안상수는 이렇게 소리친다. “미친 놈 아냐” 그래도 계속되자, 안상수는 이렇게 소리친다. “그만해라, 씨발.” 이거 기록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거다.


그때 그 인물들, 고스란히 되돌아 왔다. 참 웃긴 역사다.


이런 국내 공방이 오가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룬데슈타트 총장이 금전 로비설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무례한 건줄 아냐며 위원회 심사절차에 얼마나 무지했으면 그런 말을 하냐는 인터뷰가 국내언론을 통해 전해졌었다.


 


또 정치학을 전공한 한 국내 대학교수가, 2000년 11월초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개최된 국제심포지엄 도중 한 독일인이 던진 DJ의 노벨평화상 로비설에 대한 질문에, 노벨연구소의 올라브 욜스타드 연구실장이 했다는 답변을 국내언론이 전하기도 했었다. 당시 노벨연구소 실장의 답변은 이랬다.


 


“그렇다.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로비가 아니었다. 정치적 반대자(야당)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 된다는 로비가 있었다.”


한나라당의 DJ 콤플렉스는, 앞으로도 영원할 건가 보다. 쪼다들.


 


2) 그 외에도 DJ 발언이 여럿 바보 만든다.


이회창 총재도 한 마디 했다. DJ는 독재자를 말할 자격이 없단다. 웃기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독재를 말할 자격이 DJ보다 있는 정치인이 어디 있나. 자신이야 말로 그 시절 뭘 했다고.


 


청와대 멘트도 코미디다. “국민의 뜻에 대해, 특히 540만표라는 사상최대의 표 차이로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마치 독재정권인 양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라. 표차 큰 게 독재와 무슨 상관인가. 무식하면 씩씩하다. 그럼 아예 그런 표차조차도 없이 만장일치로 대통령 된 전두환은 민주주의 꽃인가. 정권의 독재 여부가 어디 선출의 방식이나 표차로 결정되나. 통치의 방식으로 결정되는 거지. 빙신들.



그러나 가장 압권은 이명박의 6.10 기념사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단다. 6.10이 없었으면 그래서 직선제가 쟁취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대통령으로 선출될 제도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건만. 무임승차한 가장 큰 수혜자가 하는 소리 봐라. 이래서 역사를 모르는 자는 절대 대통령하면 안 되는 거다.


오늘은 여기까지.


 


- 틈새논평 담당 딴지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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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9/06/19 21:00 | 트랙백 | 덧글(0)

미국서 푸대접 받은 노무현 VS 미국서 대접받는 가카


미국서 푸대접 받은 노무현 VS 미국서 대접받는 가카


(서프라이즈 / 혹시 / 2009-6-16 16:45)




미국서 푸대접 받은 노무현 (당시 기사)

지난 12일 오후,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하여,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일행이, 워싱턴 근교에 있는 앤드류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이날 공항에는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와 고위 외교관 몇 명이 영접을 나왔다. 미국측에서는 하위 관리들만 나왔다.
주요 외국 국가 원수가 공식적 정상회담을 위하여 방미할 때에는 부통령이 영접을 위해 나오거나 최소한 국무장관이 영접 나오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이날에는 국무부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이 최 고위급 인사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있을 수 없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인들이 노무현을 반미주의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전작권’문제로 한미관계를 불편하게 만든 장본인의 방미를 달가워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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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정부 핵심 각료와 연쇄 접견

(워싱턴=연합뉴스) 추승호 이승관 기자 =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15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근교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 2박3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이 대통령 일행을 태운 아시아나 특별기가 이날 오전 9시 50분 공군기지에 도착하자 한덕수 주미대사 내외와 김영선 워싱턴 한인연합회장, 황원균 북버지니아 한인회장, 이용진 민주평통 미주회장 등이 영접했다.

미국측에서는 로라 윌스 의전장 대리, 폴리 케니 앤드류스 공군기지 대표 등이 이 대통령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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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2003년 방미때 기사입니다.

미국을 방문중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은 13일 밤(한국시간) 워싱턴에 도착, 15일 한미정상회담을 갖는 것을 비롯해 2박3 일간의 워싱턴 일정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 일행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기가 이날 밤 11시(현지시간 13일 오전 10 시)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안착하자 한승주(韓昇洲) 주미대사 내외와 엔세냇 미국측 의전장이 노 대통령 내외를 기내 영접했다. 노 대통령은 트랩위에서 한.미 양측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내려와 엔세냇 의전장의 안내를 받아 출영한 양국측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미측 환영인사로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나왔고 국무부의 아시 아.한국담당 관리들도 대거 출영했다.

- 일단 의전장 대리가 아닌 의전장이 나왔고..국무부의 캘리 아태담당 차관보와 미국측 관리들이 마중나왔었죠.



2006년 방미때..



전 한국, 폴란드 대사이자 차기 이라크 대사로 내정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가 이때도 나왔습니다. 부시때 우리와는 사이가 무지 안좋았다고 당시 보수언론들이 차관보만 나왔다고 씹었다는데.. 좀 재미있기는 하네요. 관례상. 부통령이 오면 초극빈 대접이고 국무부 장관이 나오면 귀빈 대접이지만, 차관보가 나오는것은 일종의 예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 대통령은 방미했는데 노무현때도 나왔던 크리스토퍼 힐 이양반이 이번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네요.

이건.. 황당하기도 하네요.

오바마가 말한 융숭한 대접이 이거였나 봅니다.

의전장이 아닌 의전장 대리.. 국무부 차관보와 국무부 관리는 나와보지도 않기..

실용을 좋아하는 가카를 위한 실용적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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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9/06/16 19:27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안상수를 너무 욕하지마라..대단하신 분이시다-군대면제 쉽죠 잉!


죄송합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서프라이즈 / 군미필 / 2009-6-10 10:21)




아래 "딴나라 안상수를 너무 욕하지마라..대단하신 분이시다." 란 글에 대하여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물론 일전에 국회의원 전원의 국방의무 이행여부에 대하여 나온 자료에 대해서도 일일이 확인을 안해도 신뢰가 가는군요.


군미필이 국방을 부르짖고 그를 지도자로 모시는 우스꽝스러운 나라가 대한민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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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o.wikipedia.org/wiki/%EC%95%88%EC%83%81%EC%88%98_(1946%EB%85%84_2%EC%9B%94)



안상수 (1946년 2월)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안상수(安商守, 1946년 2월 9일 - ,경남 마산)는 한나라당 소속의 대한민국국회의원이다.


마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1974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검사로 재직하던 1987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 수사를 맡아 박처원 당시 치안감의 은폐음모를 언론에 공개한 뒤 사표를 제출하고 노동자 법률상담에 종사한다.


1996년 신한국당의 공천으로 과천시·의왕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이 후 4선을 기록하고 있다.


안상수의원의 병역사항은 다음과 같다.



  • ① 1966년 ~1967년 징병검사기피
  • ② 1968년 1을종
  • ③ 1969년 입영기일연기
  • ④ 1970년 2급
  • ⑤ 1971년 입영기피
  • ⑥ 1973년 입영기일연기 (행방불명)
  • ⑦ 1974년 입영기일연기 (행방불명)
  • ⑧ 1975년 공소권 무효
  • ⑨ 1975년 입영후 귀가
  • ⑩ 1977년 무관후보생편입
  • ⑪ 1977년 보충역 (신체검사 및 퇴교조치자로 입영의무 면제)
  • ⑫ 1978년 소집면제 (고령)


[편집] 바깥 링크








전 임
박제상
제15대 국회의원(과천시·의왕시)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신한국당
후 임
안상수






전 임
안상수
제16대 국회의원(과천시·의왕시)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
후 임
안상수






전 임
안상수
제17대 국회의원(의왕시·과천시)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한나라당
후 임
안상수






전 임
안상수
제18대 국회의원(의왕시·과천시)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
후 임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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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9/06/10 21:13 | 트랙백 | 덧글(0)

민족지가 있어야 하는 이유


조선일보가 숨기고 싶은 이야기 (좃선..토론방에서 펌)


(서프라이즈 / 좃선좃되네... / 2009-6-9 11:02)




3. 민족지 경쟁






 


 


4. 황군의 승전보를 기다리며






5. 아! 천황폐하!!


 





6. 제호 위에 빛나는 일장기





7. 아! 전두환 각하!!





8. 광주 학살자를 위한 조선일보의 노래


 


 






 


80년 광주보도 어제와 오늘


 




10. 5.18 조선일보 사설


11. 97년 IMF직전까지 "경제위기 아니다"


12. 일어는 조선일보의 국어였다


13.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살생부 초안 최초공개


14. "일본천황을 위해 죽어라!" 선동하는 조선일보


15. 마침내 철거되는 친일 조선일보 윤전기


16. 조선일보 강제폐간의 진실


17.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18. 친일파 진상규명 특별법 발의에 서명하지 않은 국회의원들


9. '탄핵반대 촛불'을 꺼라


 






 


 


 


 


박정희 수도이전 계획에 박수쳤던 조선일보


 


 


 


   



▲ 1977년 박정희가 행정수도 구상을 발표했을때 조선일보는 쌍수를 들어“새 행정수도에의 하이웨이”란 기사를 써가며 환영했던 그들이 이제는 안된다 합니다.  1977년과 지금의 2004~5년 서울이 얼마나 커졌을까요?


 

 

 

 

 

1991년 "수도를 옮겨라" 고 주장했던 조선일보


 

   



 

▲ 1991년 노태우 정권 시절 조선일보는 "수도를 옮겨라"는  칼럼까지

써가며  수도권 기능마비를 역설했던 신문입니다.

 

""서울은 상업및 문화기능을 갖는 도시로 남겨두고 행정 및

정치기능을 갖는 새도시건설을 검토함직한 시기! 그래야만

인구분산 및 전국의 균형발전이 이루어질것!""

 

 

 

그런 그들이 왜?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을 한다하니 극구 반대할까요?

 

지방 균형발전이야 어찌되건말건 자신들이 찬성하고 주장한

내용도 노무현이 하면 반대라는 청개구리 신문, 이것이 1등신문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조선일보의 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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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9/06/09 16:14 | 트랙백 | 덧글(0)

내가 죽였다 노공이산..

내가 죽였다.

이상 사회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비난과 원망과 저주는 모두 노무현이 감당하고

난 이득만 챙기려고 하였다.

난 정치에 관심없다.

그놈이 그놈이고 다 더러운 놈이다.

핑계를 대면서

난 안전지대에 서서 침묵한다.

비겁한 나의 모습

언제까지 이런 비겁한 속에 있을까?

그가  죽고 나자 모두가 지금은 "노"를 외친다.

언제까지 "노" 를 외칠까?


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9/06/04 10:49 | 트랙백 | 덧글(0)

의정비올리려고 주민번호까지 도용-대법원에 무죄하다고 상고까지 한 파렴치범들

지방의원의 월급에 해당하는 의정비를 올리기 위해 주민들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의정비를 인상시킨 한나라당 소속 지방의원들이 결국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28일 대법원은 인천 계양구의회 한나라당 소속 이병학 김창식 의원이 신청한 상고심을 기각했다. 

 

의원직을 상실한 이들은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해 의정비를 인상시킨 혐의(위계공무집해방해 등)로 기소됐으며, 지난 3월 20일 항소심에서도 항소를 기각 당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의정비를 인상하기 위해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정사용해 설문조사 결과를 조작, 지역주민의 의견을 왜곡한 만큼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라고 지적했다.


계양구의회는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8년 의정비를 2007년보다 24.5% 많은 3천319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이날 대법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상고한 인천 부평구의회 한나라당 소속 이익성의원의 상고에 대해서도 기각했다.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ㆍ2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은 이 의원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의원은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조진형(부평갑) 의원을 돕기 위해 2008년 2월 25일과 27일 한나라당 당원들에게 1만 3000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며, 재판부는 "모범을 보여야 할 지방의원으로 잘못을 뉘우치지 않아 일정 기간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이 의원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의원에 대한 상고심 선고는 지난 3월 12일 예정됐으나, 특별한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두 달 넘게 연기됐다.

 

한편, 계양구의회와 부평구의회는 각 3명, 1명이 의원직을 상실해 결원이 발생했지만, 결원이 전체 의원정수의 4분의 1에 못 미치고, 내년 상반기에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어 보궐선거는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9/06/04 10:20 | 트랙백 | 덧글(0)

한나라당의 미담 사례


한나라당의 미담 사례


(서프라이즈 / 무단전재 / 2008-8-18 02:12)






  • 패러디 한나라당의 미담 사례 [53]
  • 물푸레물푸레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24097 | 200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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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8/08/18 16:55 | 트랙백(1) | 덧글(0)

충격적인 사실들과 사진-군인은 임무는 국민보호이거늘 독재자의 수족이 된 짐승들


그 충격적인 사진을 찾았습니다...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서프라이즈 / 가슴아픈역사 / 2008-7-29 23:21)
































                      사진으로 보는 5.18 (5.18기념재단 보유사진입니다)



 


 


 









▲ 허화평 전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 15일 "(80년 광주의)

 계엄군은 착검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복

진 <전남일보> 사진부 기자가 80년 5월 19일 촬영한 사진

에는 M16 자동소총에 대검을 꽂은 채 시민들을 쫓고 있는

 공수부대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붉은 색 원) 5.18

기념재단이 펴낸 <오월, 우리는 보았다 - 계속되는 오일팔

(1979.2.25-2004.5.18)>에서 발췌. ⓒ2005 신복진 








▲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계엄군이 착검하지 않았다

는 허화평씨 주장과 달리 신복진 <전남일보> 사진부 기자

가 80년 5월 19일 당시 촬영한 사진에는 M16 자동소총에

 대검을 꽂은 채 시민들을 구타하는 공수부대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5.18기념재단이 펴낸 <오월, 우리는 보

았다-계속되는 5.18>에서 발췌.  ⓒ2005 신복진











오월에서 푸른 시월까지




손현숙 (1969-그룹 천지인 보컬 )



 


  오월에서 푸른 시월까지




                      (작사:김현성 작곡:김현성)




따스한 햇살이 나를 부르듯 오월이 왔네



친구는 이야기하네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자유를 모르는 자 참된 사랑을 모른다네



그대가 뛰어가는 젊은 거리에 내가 있고



그대가 쓰러지면 내가 다시 뛰어가리



눈부시게 오월에서 푸른 시월의 하늘까지



서로 사랑하며 눈물 닦아주며



[화려한 휴가의 기록]

5월 17일

밤 11시 40분, 문공장관 이규현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계엄 확대가 발표되고 두 시간이 지난 후,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에 특전사가 투입되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


좌측 머리부분이 함몰된 광주항쟁 사망자


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린 상태에서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 학생 100여명과 무장 공수대원이 대치하였다. 200-300명 정도로 수가 불어나자 학생들은 "계엄해제" "계엄군 물러가라" "휴교령 철회하라" 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곧 대치 중이던 공수부대 책임자가 "돌격 앞으로" 라는 명령을 내렸고, 공수대원들은 학생들에게 파고들면서 곤봉을 휘둘렀다. 곤봉은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이를 맞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좌측 가슴에 총상과 자상이 난 채 사망한 광주항쟁 사망자


 


"공수부대 병사들은 마음껏 모든 가능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첫날부터 대검을 사용하였고, 지나친 폭력에 항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고, 여성들에게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였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뒤쪽에서 본 위 사진 사망자의 총상 자국


 


"공수 놈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살이 넘어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내 새끼를 왜들 이러요?" 하면서 만류하자 공수놈들은 "이 씨팔 년은 뭐냐, 너도 죽고 싶어?" 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군화발로 뭉게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여학생의 교복 상의를 대검으로 찢고 여학생의 유방을 칼로 그어버렸다.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가슴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샘물, 1988)



아...하늘이여....


"어느 할아버지는 "저럴 수가 있느냐, 나는 일제 때에도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었지만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은 처음 보았다.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저러는가. 죄가 있다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저놈들은 국군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야." 하면서 통곡했다. 어느 중년의 사내는 "나는 월남전에는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저런 식으로 죽일바엔 그냥 총으로 쏴 죽이지. 저 놈들은 죽여버려야 해" 하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온 거리는 피의 강,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



무참하게 구타당한 채 사망당한  광주 영령


 


5월 19일
"5월 19일에 저질러진 공수부대의 만행은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들에게 울먹이면서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공수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고 애원할 정도였다."







사살되거나 타살후 리어카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을 기다리는 시신




"주위의 노인들이 공수대원의 폭력을 만류하자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쳤다. 노인들도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런 모습을 도망치며 바라본 시위 군중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일시에 돌아섰다. 그리고는 "좋다, 다 죽여라!" 하면서 공수부대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중이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기사는 안타깝게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운반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호소하자 그 공수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 이는 다음날인 20일, 또 하나의 기폭제였던 차량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어떻게 눈을 감았을꼬..


 


5월 20일
대검만으로는 모자랐던 걸까. 20일 오후부터는 심지어 화염방사기까지 사용하였다. 2시 30분경 공수부대는 화염방사기를 쏘아 여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타 죽었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택> (인물과 사상, 2003)


 


"시민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TV를 통해 방영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모두 열심히 시청하였지만 TV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연속극이나 오락프로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젼을 보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한 쪽에서는 죄 없이 같은 동포가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저 텔레비젼의 다리를 흔들어 대는 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배신감이었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아.....아.....그저 눈물만....


 


 MBC 이외에도 KBS와 세무서도 불에 탔다. 신군부는 이 방화들을 '폭도론'의 증거로 TV 등을 통해 계속 보여주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얼마나 얼마나....


 "전남대에서 신역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아스팔트와 건물을 향해 사격을 실시한다. 트럭 위에서는 M60이 엄호사격을 하면서 한 발 한 발 신역을 향해 다가간다. 사병들을 향해 고함치기 시작했다. 후퇴는 없다. 후퇴하면 모두 쏴죽인다."
- 광주매일 정사 5.18 특별 취재반 <10일간의 항쟁> (사회평론, 1995)




피멍이 들어 사망한 광주영령을 방치한 공수부대


 


5월 21일
오전 10시경 금남로에는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시민들은 일단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후 1시 정각, 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다.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려는 것이었을까.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광주매일 정사 5.18 특별 취재반 <10일간의 항쟁> (사회평론, 1995)


거의 미이라가 된 상태로 방치된 시신



 


"공수놈들은 같은 동족을 살상하고도 쓰러진 사람들을 옮기지 못하도록 연발로 위협사격을 해대었다. 아직도 공수부대놈들의 사격선 부근에서 부상한 채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애원소리는 처절했고, 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를 끓게했다. 공수놈들은 아직 죽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민들을 구하려고 뛰어나가는 시민들에게조차 사격을 가해 사살해버렸다. 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샘물, 1988)



얼마나 아팠을까 아



"순식간에 금남로는 피와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 공수부대는 도청과 주변의 건물에 숨어 보이는 사람들마다 져격하였다. 1시 30분경에는 한 청년이 장갑차 위에서 윗통을 벗고 태극기를 높이 휘날리며 도청을 향해 '광주만세!' 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모든 시민들이 긴장되어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 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피가 튀며 청년의 목이 꺽어졌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시민들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온몸을 떨었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전쟁' 이었다. 시민들은 곧 총을 얻기 위해 시내, 외의 무기고로 향했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사살되거나 타살되거나 대검에 찔려 방치된 시신들


21일 저녁, 드디어 시민군은 계엄군을 도청에서 몰아내고 점거하는데 성공한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택> (인물과 사상, 2003)


5월 22일
22일 비공식적인 정전이 성사되고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시민 수습위원회와 신군부 사이에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날 계엄당국은 김대중을 광주폭동의 배후라고 발표했으며, 일부 특전사 지휘관들은 무력을 동원해 광주 '폭도들'을 '소탕'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윌리엄 글라이스틴, 황정일 역. <알려지지 않은 역사> (중앙 M&B, 1999),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아..........


전두환은 정석환에게 "최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며 전두환 자신의 명의로 금일봉 1백만원을 최웅에게 전해달라고 지시했다.
- 정석환, <비화/ 5.18당시 정보부 전남지부장 정석환 비망록> (신동아, 1996 1월)


 


5월 24일
공수부대는 지원동 주남마을을 출발하여 학동과 진월동을 거쳐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야산으로 철수하던 중 진월동에 이르러 인근지역에 장난삼아 총질을 가했다.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아이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자 아이들은 둑 너머로 피신했지만, 전남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광범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또한 진월동 동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집중사격을 가했다. 모두 피신했지만 신발이 벗겨져 뒤돌아섰던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는 총에 맞고 즉사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님이여...


전남대학교 교수들은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들에게 고함>을 발표했다. "모든 사람들은 6.25때에도 이런 참혹한 살육전은 없었다고 울부짖으며 '모두 죽자' '죽여달라' 를 외치며 짐승 같은 계엄군과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중략) 고립된 우리 광주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한시가 절박합니다. 민주시민이여! 민주화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일어섭시다."
- 김정남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활성서, 2002년 12월)


 



조국은 그대들에게 총칼로 잔학했는데..그래도 태극기를 덮고...



5월 25일
아침 8시, 황금동 부근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21세의 장계범이라는 사람이 도청 농림국장실에 쓰러지듯이 허겁지겁 들어닥치면서 어깨를 움켜쥐고는 "독침을 맞았다!"고 소리쳤다.... (중략) 독침 사건이 발생하자 도청 안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살벌해졌다. 여기저기서 간첩이 침투했다는 소문이 돌고 모두들 수군거리며 도청 안에는 불안해서 못 있겠다며 상당수가 빠져나갔다...(중략) 이 사건은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서 침투정보요원들의 도청지도부 교란작전이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길거리에 방치된 광주의 영령들


 


5월 26일
전남 도청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의 일간지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 블레들리 마틴은 이 기자회견에서 만난 광주항쟁 지도부의 청년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그가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에는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 지적인 눈매와 강한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 임창용 <'폭동'아닌 '민주항쟁' 자리매김 큰 몫 윤상원 5.18 시민군 대변인> (서울신문 1998 9월 10일)


다 피지도 못하고...여인이여...


5월 27일 0시를 기점으로 광주의 시외 통화가 끊기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계엄군이 진입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절통하고 절통해서 어찌 눈을 감겠소...


 



5월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앞은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으며, 금남로를 중심으로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엄군의 장갑자 위에 장착된 서치라이트가 도청을 비추는 가운데 계엄군은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 통첩을 방송했다. 그러나 도청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곧 총성이 울림과 함께 계엄군의 서치라이트가 박살났다. 다시 캄캄한 어둠이 내리깔렸고 계엄군의 일제사격이 개시되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달아나던 시민군을 살해했던 계엄군은 8명의 투항자들을 전부 사살하였다. 한 계엄군 병사는 한쪽 발을 시민군 포로의 등에 올려놓고 사격하면서 "어때, 영화구경하는 것 같지?"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아.......그저........


 







 


"시민군들이 모두 정면으로 응사하는 동안 뒷담을 넘어 들어온 3공수 특공대는 도청 건물로 잠입하여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고 여기저기 수류탄을 까넣었다. 그리고는 확인사살까지 했다. 많은 시민군들은 특공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그 날 이후

광주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후 서울로 올라왔던 서강대생 김의기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5월 30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글을 뿌리면서 투신 자살했다.

후일,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전체 사망자 수는 2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처음부터 사상자수를 은폐하기 위해 사상자가 발생하는대로 트럭에 싣고 아무도 모를 곳에 파묻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조선일보>는 5월 25일자 사설에서 항쟁세력들을 '분별력을 상실한 군중'으로 몰아붙이고는, "......57년 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역사가 반교사적으로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주고 있다..." 며 마치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한 일본인 폭도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 정운현 <'광주의 굴레' 못 벗은 한국언론> (대한매일 2001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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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8/07/30 14:22 | 트랙백 | 덧글(0)

재미교포 Jay Kim이 보내온 동영상입니다


재미교포 Jay Kim이 보내온 동영상입니다.


(서프라이즈 / 명박퇴진 / 2008-7-2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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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을이땅에서도 | 2008/07/23 15:06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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